7-10세,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10편이면 충분합니다. 그 10편은 아이가 평생 상상력의 원천이 됩니다. 이야기 해 주는 시간, 대상, 방법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은 침대에 누워서 잠자기 30분 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방법은 동네 인근에서 일어나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 이것만 지키면 그 아이는 평생 10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용기있게,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야기 10개로 된다니, 투자해볼만한 가치가 있죠.
55년 전 할아버지의 생생한 기억: 산길의 여우와 개울 통 속의 엄마
티제이
너희 한국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렴.
할아버지가 어릴 때, 나의 할아버지한테 너무나 재미나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단다.
그때 듣고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었는데,
무려 55년이 지나 어린 일곱 살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그대로 살아났단다.
이건 정말 기적이지.
그만큼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내 뇌 속에 깊숙이 새겨져, 평생 내 상상력의 근원이 되었다는 생생한 증언이란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밤마다 너희에게 꼭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란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 자체는 천 권의 책보다도, 한 나라의 역사보다도 훨씬 중요하단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 몇 개로 내 머릿속에 한 나라를 건국하고 번창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으니까 말이야.
일 년 내내 아이디어를 내라고 해도 아이디어가 샘처럼 쏟아져 나온단다.
그 모든 생각의 근원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였어.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내 평생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이 된 것이지.
자, 그럼 그 신비롭고 아슬아슬한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보자꾸나.
우리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단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 모퉁이를 싹 돌아가면, 산에 밭이 하나 있었거든.
그날은 바로 동네 장날이었어.
그런데 그 산에 사는 여우는 영리해서 장날을 귀신같이 알고 있었단다.
장날만 되면,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슬그머니 나타나는 거지.
그날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쌀을 팔러 함께 장에 가셨단다.
할아버지는 쟁기 쇠를 갈고, 할머니는 쌀을 파는데 할아버지 일이 먼저 일찍 끝이 난 거야.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기다리다가, 마침 동네 친구가 할아버지에게 ㅜ짐을 같이 옮겨 달라고 부탁을 했지.
그래서 할아버지는 동네 친구의 짐을 옮겨주고, 친구 달구지를 타고 집으로 먼저 와 버렸단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도 없고 연락할 방법이 없었거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알아서 곧 오겠거니 생각했지.
하지만 할머니는 장터에서 할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렸어. 해 질 무렵까지 기다려도 할아버지가 오지 않자, 할머니는 결국 혼자 집을 향해 출발하셨지.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거야.
흙길이 미끄러워 발이 자꾸만 미끄러지니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단다.
그사이 날은 완전히 저물어버렸어.
하필 그날이 섣달그믐날이라 칠흑같이 어두워서, 발도 안 보이고 길도 도무지 안 보이는 깜깜한 밤이었지.
할머니는 머리에 무거운 장짐을 이고 가는데, 비는 내리지, 길은 미끄럽지, 앞은 캄캄하지,
아무리 걸어도 앞으로 나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단다.
그때, 저 앞쪽에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보였어.
그 불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조금 다가가면 더 밝게 보이는 거야.
누가 꼭 마중나온 것처럼 느낀 거지, 마음속에 간절하게 도움을 바랐으니, 그게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이 된거지
그래서 비록 반딧불처럼 작은 불빛이지만 길을 비춰주나 싶어 그 불을 따라 걸어가셨지.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길은 마을길이 아니라 험한 산길로 가는 길이었어!
'아차! 여기에 사람 홀리는 여우가 나타난다고 하더니!'
할머니는 퍼뜩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여우가 도깨비불로 사람을 꼬여서 산길로 끌고 다니면, 밤새 숲을 헤매다 결국 짐까지 다 빼앗기거든.
여우가 노리는 건 바로 할머니 머리 위의 장짐이었어.
그 안에는 맛있는 생선과 달콤한 과일, 그리고 할아버지가 먹을 과자가 가득 들어있었으니까!
할머니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을 다시 잡아가려는데, 산 위 밭에서 흙이 후드득 날아오는 거야.
여우가 길을 못 가게 훼방을 놓기 시작한 거지. 여우는 정말 머리가 영리하거든.
흙이 쏟아지자 할머니가 소리를 빽 질렀단다.
"이 여우야, 저리 가!"
그러자 기가 막히게도 여우가 사람 목소리로 똑같이 흉내를 내는 거야.
"할망구야, 저리 가!"
여우 말에 말려들어 대꾸를 하면 영영 집에 갈 수가 없었지.
할머니는 발밑의 돌을 더듬어 찾아 산 언덕 위로 힘껏 던지셨어.
그러자 여우 녀석도 언덕 위에서 작은 돌멩이들을 와르르 쏟아부었단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할머니에게 불리했어.
여우는 밤눈이 밝아 어두울수록 세상이 훤히 다 보이지만, 할머니는 눈앞이 캄캄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보통 분이 아니셨지. 정말 겁이 없으셨거든.
'이러다간 장에서 사 온 소중한 짐을 몽땅 빼앗기겠구나!'
할머니는 온 힘을 다해 산길을 넘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셨단다.
언덕 위에서는 여우가 발을 맞추어 걸어오며 괴상한 소리로 위협을 하고,
길 아래에서는 할머니가 짐을 붙들고 잰걸음으로 쫓기듯 걸어갔지.
그때 할머니가 기지를 발휘하셨단다.
마침 장터에서 사 온 양은 냄비가 짐 속에 있었거든!
할머니는 얼른 돌멩이를 쥐고 그 냄비를 땅! 땅! 땅! 힘껏 두들겨 요란한 소리를 냈단다.
쇠붙이 두드리는 벼락같은 소리에 놀라 여우 녀석이 잠시 주춤하며 조용해졌지.
그 틈을 타서 할머니는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겼단다.
한편, 집에 일찍 와 있던 할아버지는 저녁이 깊어도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덜컥 걱정이 되셨지.
"이 밤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틀림없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마중을 나가자고 하셨단다.
우리는 짐을 실을 리어카를 끌고, 혹시 몰라 긴 나무 작대기를 무기 삼아 단단히 쥐었지. 꼬마였지만, 그래도 밤에는 사람이 많아야 서로 위안이 되거든,
그리고 흔들거리는 호롱불 하나를 들고 캄캄한 빗길을 나섰단다
그런데 산길에 홀로 갇혀 사투를 벌이던 할머니는,
우리가 들고 가던 불빛을 먼데서 보게 된 거야, 저 아래쪽에서 어른거리는 호롱불 불빛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서
할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단다.
'아이구야, 이제 난 정말 죽었구나! 도깨비불을 앞세우고 다른 여우 떼가 더 몰려오는구나!'
사방이 적인 줄 안 할머니는 얼른 길옆 개울가에 묻혀 있는 둥근 물 통(수로관) 속으로 몸을 쏙 숨기셨단다.
한편, 우리는 엄마하고 아무리 불렀지만, 할머니에게는 안 들린 거지, 통속에 들어가 있으니 바깥 목소리가 들릴리가 없지,
할아버지와 나와 동생은 산길에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아예 장터까지 갈 생각으로 묵묵히 산길을 빠르게 올라가고만 있었어.
한참을 올라가는데, 산 언덕 위에서 뭐가 휙! 하고 날아와 발밑에 툭 떨어지는 거야.
호롱불을 비춰 주워 보니, 맙소사! 할머니의 신발 한 짝이었단다!
"큰일 났다! 여우 녀석이 기어이 할머니를 덮쳤구나!"
할아버지는 눈이 뒤집혀 쏜살같이 산 위로 뛰어 올라가셨지.
할아버지는 여우 쫓는 법을 훤히 아셨거든. 작대기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니 겁 많은 여우 녀석들이 숲속으로 흩어졌어.
하지만 산 위 어디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단다.
"할머니 신발이 여기 있으니, 근처를 차근차근 샅샅이 뒤져보자!"
숨을 만한 곳은 오직 저 아래 개울가뿐이었어.
여우는 물을 아주 무서워하기 때문에 개울 쪽으로는 절대 내려오지 못하거든.
개울가로 내려가 보니 길 밑으로 물이 지나가는 좁은 통이 하나 보였지.
그 통 안은 너무 좁아서 어른인 할아버지 몸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단다.
하지만 내 몸은 작았잖아? 일곱 살 어린 내 몸은 쏙 들어가더라고.
나는 캄캄한 통 속을 네발로 기어서 조심조심 기어 들어갔지.
그런데 저 안쪽 깊은 곳에 시커먼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 거야!
통 안쪽 깊숙이 숨어 있던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점점 기어 들어오니 기겁을 하셨지.
'기어이 여우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통 속까지 쫓아 들어오는구나!'
할머니는 공포에 질려 통 끝까지 벽을 긁으며 바짝 물러섰어.
나도 앞으로 자꾸 기어 들어가고, 할머니도 뒤로 물러서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곳까지 닿았지.
할머니는 '아,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며 덜덜 떨고 계셨어.
그런데 내 눈에는 그 검은 덩어리가 자꾸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게 이상해 보였어.
어린 마음에 이상하다 싶어 가만히 소리 내어 불러보았지.
"엄마...?"
통 속에서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도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하셨단다.
교활한 여우가 사람을 홀리려고 어린아이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줄로만 안 거야.
할머니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이제 죽었구나' 하고 두 눈을 질끈 감으셨지.
"엄마, 나야! 엄마!"
귓가에 닿는 숨소리에 할머니가 떨리는 눈을 번쩍 떴단다.
눈앞에 있는 건 여우가 아니었어.
비를 쫄딱 맞고 손발에 흙을 묻힌 채 자기를 찾아 들어온, 진짜 자기 어린 아들이 호롱불 빛을 받으며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