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리처드 교수] 세계를 구출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단언하는 교수, 그 이유는???

샘리처드 교수님의 영상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분이 찾고자 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이지만, 그분은 한국이 세계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찾아 놓고 있고 있었고, 누군가가 저와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10년, 20년, 저는 제와 꼭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아이고. 그런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샘 리처드 교수가 적임자가 아닐까? 한국인이 세계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그의 유투브 영상을 하나하나 돌려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점을 찾아내게 됩니다.
잘 하면 이 분은 한국을 완전히 이해하는 첫번째 외국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점차 굳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그분은 미국인,,,,저는 한국 내부에서 자생적인 연구자
그분은 학자이면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해답을 얻고자 하는 분.
우리가 만날 포인트는?
한국인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난제들을 해결할 키를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덕적이고, 평화적이고, 생산적이라서 서로 피터지게 죽이고 전쟁하지 않아도 살아나갈 수 있다.
성장의 속도를 빨리하고, 빵의 크기를 더 크게하면,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논리,
서로 배우고, 서로 도와주면 더 크게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
한국인은 무섭게 성장하는 민족,
무섭게 공부하는 민족,
깨우침에 한계가 없는 민족,
성취를 엄청 올리면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없다는 민족,
뭘 남하고 다퉈? 그럴 필요없어, 내가 자신을 끌어 올려서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데,
누구나 우리 밑바닥에는 그런 자신감,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세 안 져도 되,,,내가 더 일찍 일어나서 노력하면 되지,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한반도 한민족이 된 나라,
그 무섭게 한 노력들이 세계에 알려져서 모두가 감동하는 나라
BTS, 노래, 춤, 방산, 원자력, 축구, 양궁, 반도체, 조선, 자동차, 스마트폰, 티비, 모든 것은 노력의 산물이고, 끝없이 도전한 결과이다. 아마 전쟁이 없다면 50년 뒤에는 세계 최강국이 한국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는 세계 어느 역사에도 없다.
성장하는 DNA를 가진 나라
지기를 싫어하는 나라가 아니고 끝없이 자기 혁신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나라.
한 사람 한사람이 전부 연구자이고, 석사 박사이고, 세계 최고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건들이지 말아, 건드리면 큰일나...가만히 놔두라 알아서 하게..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일어서는 나라,
이 나라의 특징을 지켜보고 있는 대학자가 있으니 그 사람이 샘 리처드,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우리가 가진 능력의 원인을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붙여서 해석을 해 봅니다.
제가 개발해 놓은 것은 METACOGNITION QUOTIENT입니다.
생소한 것 같지만 이미 나와 있는 이론인데, 한국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지수입니다.
정성적 지표가 아니라 정량적으로 데이터로 환산해 낼 수 있습니다.
이 지수가 가장 높아서 한국인의 무한성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지수에 딱 되면 한국이 앞으로 50, 100년뒤에는 최강국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5천만 인구가, 1억이되고, 3억이되고, 5억이 되는 과정이 나타날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한국인이 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에 살지 않아도, 외국에 살면서도 저절로 한국인이 되어버리는 과정속에 있습니다.
한국문화에 젖어서 매일 한국인처럼, 한국인 교육을 받고, 한국 말을 쓰고, 한국 생각을 하니 저절로 행복하고 잘사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수준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져 버립니다.
여기 나오는 샘 리처드 교수의 말을 재 정리하여 MQ를 증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MQ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인의 특징과 미래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부. 세계를 구출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라고 단언하는 외국인 교수

이 영상의 핵심은 단순히 "한국을 칭찬한 외국인"이 아닙니다.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왜 한국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특히 반복해서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는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 공동체 의식
* 도덕적 선택
* 사회적 합의
* 교육과 자기 경쟁
*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
**50개국을 돌아본 사회학자의 결론..."희망은 대한민국뿐이었다."**
"50개국을 여행한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놀라웠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한국에 달려 있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은 나라.
자원이 부족한 나라.
분단국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사회학자 샘 리처드 교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무려 50개국을 여행했습니다.
관광객처럼 유명한 명소만 둘러본 사람이 아닙니다.
각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회가 움직이는 원리를 연구한 사회학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을 바라보며 남긴 첫마디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 역시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세계를 이끄는 미국도 있고,
경제 강국 독일도 있으며,
기술 강국 일본도 있는데,
왜 하필 대한민국일까?
그런데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미국 사회를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은 너무 거대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으로도 극심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합의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표현했습니다.
'미국인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서로 싸울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의 나라를 향한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달랐습니다.
국회에서는 싸우는 것처럼 보이고,
인터넷에서는 매일 논쟁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보면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함께 움직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코로나19 시기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방역 수칙을 지켰습니다.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샘 리처드 교수는 이것을 '사회적 합의 능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앞으로 인류가 맞이할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위기란 바로 기후 변화입니다.
아니, 그는 '기후 붕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인류는 알고 있습니다.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도,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먼저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생활 방식을 바꾸는 일.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한국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결정을 내릴 때,
나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함께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가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이 아니었습니다.
1984년.
미국 대학원에서 만난 한 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모든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인연은 무려 4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40년의 관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다음 이야기는 더욱 놀랍습니다.
2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반도체 때문이 아닙니다
"1984년.
미국의 한 대학원.
젊은 사회학자였던 샘 리처드는 한 명의 한국인 대학원생을 만납니다.
그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먹었습니다.
김치를 맛봤고,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그의 연구 대상은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군사정권과 사회 구조를 연구하던 그에게 한국은 단순한 비교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은 더 이상 '연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40년 동안 그는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남미.
그리고 아시아.
무려 50개국을 직접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에서 느꼈던 독특한 분위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네 가지를 말했습니다.
품위.
자존감.
배려.
그리고 예절.
그는 놀랐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도,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도,
다른 나라에서 만난 한국인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계 어디에도 따뜻한 공동체는 존재합니다.
그 역시 중동 사회의 가족 중심 문화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무언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공동체를 위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선택합니다.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엘리베이터를 탈까.
계단을 이용할까.
쓰레기를 분리배출할까.
그냥 버릴까.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그는 던졌습니다.
'나만 편하면 되는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가.'
그는 이것이 도덕성의 방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개인만 바라보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잃게 됩니다.
반대로 공동체를 함께 바라보는 사회는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위험도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은 편리합니다.
세상과 연결해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주변 사람들과 단절시키기도 합니다.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있어도,
모두가 각자의 화면만 바라봅니다.
친구와 함께 있어도,
눈보다 화면을 더 오래 바라봅니다.
샘 리처드는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보았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수천 명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사회.
그 사회는 결국 공동체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오래된 우화를 들려줍니다.
'장님 학자들과 코끼리 이야기'입니다.
여덟 명의 학자가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만집니다.
누군가는 다리를 만지고,
누군가는 귀를 만지고,
누군가는 꼬리를 만집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건 기둥이다.'
'아니다, 부채다.'
'틀렸다, 밧줄이다.'
하지만 누구도 코끼리 전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샘 리처드는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내가 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를 강조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필요합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이 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가 한국을 높이 평가한 이유는 경제 규모 때문도,
K-팝 때문도,
반도체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결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또 하나의 '기적'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 기적은 바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교육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듭니다.
3부, 학원공부, 끌려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공부에 놀라 자빠집니다.
샘 리처드 교수가 이걸 깨닫는 순간, 망치로 크게 맞은 기분입니다.
아니 도대체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다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지?
도대체 아무 설명이 안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METACOGNITION QUOTIENT.
외국인과 한국인의 완벽한 차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것이 MQ입니다.
제가 샘 리처드 교수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이 바로 MQ입니다.
세계인이여 걱정하지 말아, 한국인의 MQ가 세계를 구출할 것이다.
인정만 해 주라.
"샘 리처드 교수는 한국 사회를 설명하며 가장 놀라워했던 장면이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밤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미국이라면 가족과 외식을 하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즐길 시간입니다.
그런데 서울의 밤은 달랐습니다.
거리는 환했지만,
그 불빛의 상당수는 학원이었습니다.
한 블록을 걸으면 또 학원.
다음 골목에도 학원.
건물 위층마다 학원 간판이 이어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누군가 강제로 끌려온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목표를 향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직접 학원을 방문해 학생들과 대화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학자인 그의 눈에는 이것이 단순한 교육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회 전체가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이것을 거의 기적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은 본래 편한 길을 선택하려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싶어 합니다.
놀이터가 교실보다 즐겁고,
친구들과 축구하는 시간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더 행복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습니다.
부모도,
학생도,
사회도 함께 '배움'이라는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강제로 만들어진 문화가 아니라고.
누군가 총을 들고 공부시키는 것도 아니고,
법으로 학원을 강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한국 교육의 모든 면을 찬양한 것은 아닙니다.
과도한 경쟁과 긴 학습 시간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학자로서 그의 관심은 '좋다, 나쁘다'의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회적 합의가 가능했는가.'
그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답을 한국인의 문화 속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힘.
자기 자신과의 경쟁.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불편을 감수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다시 기후 문제로 이야기를 돌렸습니다.
이제는 '기후 변화'가 아니라 '기후 붕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기업도 변해야 하고,
정부도 변해야 하며,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활 방식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다시 한국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어려운 변화를 함께 이뤄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인인 자신을 예로 들며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미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심지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만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고백은 한국을 칭찬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회를 향한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달랐습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한국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는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나에게 희망을 준다.'
이 말은 한국이 완벽한 나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갈등도 있고,
문제도 있으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직접 돌아본 한 사회학자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한국은 함께 배우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행동할 가능성이 큰 나라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우리 안에 있는 힘을 보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을 경제 규모만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그 질문의 답을 한국 사회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기대에 걸맞은 대한민국을 앞으로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
# [엔딩 & 시청자 참여 유도]
[나레이션]
"오늘 영상을 보시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샘 리처드 교수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인류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더 많다고 보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 하나하나가 더 깊은 토론을 만드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영상이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샘 리처드 교수가 한국인의 도덕성과 공동체 정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한 또 다른 이유'**를 더욱 깊이 있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대본은 참고하세요,그의 인터뷰 내용 원문입니다>
**(00:00 - 00:37)**
제게 가장 눈에 띄었던 한국에 대한 점은, 한국과 같이 작지만 강력한 국가가 인류가 실제로 사회를 전면 개편하고 재조직하는 방식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나라(미국)처럼 크고 복잡한 국가와 달리, 한국인들은 주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기적과도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하다가 멈추기 마련인데, 한국인들은 해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한국인들은 똑똑합니다. 미국인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죠. 저희는 모두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싸우기만 할 것입니다.
**(00:37 - 01:17)**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싸우는 것이 제 나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게 희망을 줍니다. 카카오톡도 그렇습니다. 저는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쓰기 쉽더군요. 저는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기 때문에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다양한 메시지 앱을 사용합니다. 여러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서 메시지가 오는데,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카카오톡을 쓰다 보니 저도 그냥 사용합니다. 네, 그 앱으로 연결된 친구와 인맥이 아주 많습니다. 작년에는 한국에 세 번 왔고, 올해는 아마 서너 번 정도 오게 될 것 같습니다.
**(01:17 - 01:50)**
한국에 오는 것은 참 좋지만, 문제는 제가 강의를 하고 있고 여러 일로 바쁘다 보니 오랜 기간 머물 기회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주 좋습니다. 1984년 석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국인 대학원생을 만나면서 처음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권위주의 또는 군사 정부 시절이었는데, 당시 제 전문 분야가 라틴아메리카였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군사 정부들을 연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01:50 - 02:26)**
한국을 라틴아메리카 정부들과 비교하는 사례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음식도 먹어보았습니다. 그 유학생의 아내분이 저를 위해 한국 음식을 차려주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김치를 먹어보았고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주 연구 분야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래 살았고,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이후에는 중동을 연구하며 중동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더 많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한국을 알게 된 이후 약 40년 동안, 저는 항상 한국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02:26 - 03:04)**
저는 약 50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사회학자이기 때문에 여행 책자에 나오는 '서울, 타이베이, 도쿄, 뭄바이에서 해야 할 10가지' 같은 관광지에는 거의 가가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한국 현지의 한국인들이 제가 어디에서든 접했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품위(dignity), 자존감, 배려심, 그리고 예의 바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03:04 - 03:39)**
평생 관찰해 온 덕목들이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측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동 문화, 즉 아랍 이슬람 문화 역시 자존감이 높고 가족 중심적이며 매우 아름다운 문화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제 눈에 유독 도드라지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 인류는 진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기 중에 수많은 탄소를 배출했지만 이를 다시 회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불안정한 기후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03:39 - 04:09)**
물론 전 세계를 탈탄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80억 명의 인구가 모두 각자 익숙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현하기란 극도로 어렵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 나라처럼 지나치게 크고 복잡한 국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어차피 그 어떤 것에도 합의하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완전히 상극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반면 한국인들은...
**(04:09 - 04:38)**
특정 형태의 합의에 도달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안에 대해 유기적인 합의를 이루어냅니다. 물론 국회나 정부를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모든 것을 두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중요한 사실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집단적·사회적·공동체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러한 사회적 합의와 삶의 방식이...
**(04:38 - 05:15)**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내려야 하는 매우 어려운 결정들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지 밝혀내는 데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작지만 강력한 국가가 사회를 실제로 재편하고 재조직하는 방식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본보기(demonstrator)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하며, 우리는 일상에서 늘 이를 수행합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오면서도 '택시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지하철에서 나와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05:15 - 05:45)**
우리는 하루 종일 이러한 결정을 내리며, 이는 우리의 도덕성과 윤리, 즉 옳고 그름, 선과 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나타나는 지향성이 있습니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결정하는가? 바로 지금의 나만을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생각하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은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는 게 나한테만 좋은 걸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기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탄소를 조금 줄여보자. 가스를 너무 많이 쓰지 말고 지하철을 타자. 그럼 좋을 거야.' 이처럼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05:45 - 06:15)**
도덕적·윤리적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항상 개인의 필요를 더 생각할지, 아니면 공동체의 필요를 더 생각할지 지향성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균형을 잃기도 하지만, 보통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06:15 - 06:52)**
이것이 바로 도덕성의 인도주의적(공동체적) 지향성과 개인주의적 지향성이며, 모든 사회는 특정 방향으로 지향성을 가집니다. 저의 첫 연구 프로젝트도 도덕성의 공동체적 지향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연구하던 에콰도르 시골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여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그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점차 개별적인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하는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을 형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06:52 - 07:27)**
이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개인 자신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습이죠. 저는 가톨릭교회의 신부와 수녀들이 사람들을 다시 공동체적 도덕성과 규범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봅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 생각만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세계 다른 나라들을 더 연구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07:27 - 08:02)**
한국인들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볼 때, 한국 내부에서는 큰 변화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상에서 왜 공동체적 지향성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현대 기술과 삶의 방식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자기 자신만을 책임지도록 유도합니다.
**(08:02 - 08:36)**
스마트폰을 쥐고 화면을 바라볼 때, 오직 '나와 스마트폰'만 존재하게 됩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됨을 의미합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타인 및 주변 사회 집단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는 방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단절시켜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적 유대감, 즉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이러한 감각이 중요합니다.
**(08:36 - 09:11)**
만약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행동 변화에 따라 공동체적 유대감마저 변해버린다면, 사회는 도미노처럼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므로 매우 심각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옳은 삶의 방식이란 그저 스마트폰만 보고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합니다.
**(09:11 - 09:46)**
그 지점에 이르면 수많은 연쇄 효과(도미노 효과)가 일어나며, 이는 우리가 결코 원치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계속 연결되어 있도록 공동체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아내가 자주 인용하는 우화가 있습니다. 아내는 '장님 학자들' 우화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7~8명의 학식 깊은 학자들이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만지고 있습니다.
**(09:46 - 10:18)**
한 명은 다리를, 한 명은 꼬리를, 한 명은 귀를, 한 명은 등, 코, 입을 만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지 못한 채 감촉만으로 '이것은 입이다', '이것은 다리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두 틀렸습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부분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대화하고, 타인이 무엇을 보는지 이해하는 감각입니다.
**(10:18 - 10:49)**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난제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이 늘 필요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꼬리를 잡고 이것이 꼬리라고 확신하더라도, '아니다, 이것은 엄니나 입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면 서로 싸우기만 할 뿐 아무도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10:49 - 11:26)**
타인을 향한 지향성은 우리가 세상의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함께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입니다. 인간은 탐구하고 질문하도록 태어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질문을 던집니다. 주변을 관찰하며 '이건 뭐예요? 왜 이건 매끄럽고 저건 거칠어요?'라고 질문합니다.
**(11:26 - 11:59)**
인간은 본래 이유와 방식을 알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산업혁명 후기 이후 필요한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공교육 및 현대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쓰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했습니다.
**(11:59 - 12:32)**
20세기 초부터 대중 교육이 시작되었지만, 이는 본래의 삶의 방식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묶여 앉아 읽고 듣고 쓰기를 자발적으로 원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아마 1% 정도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놀고 탐험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결국에는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12:32 - 13:03)**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교육 시스템에서는 아이들이 몇 주 동안 놀다가 지루해지면 스스로 책상에 앉아 '이제 글이나 수학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한국처럼 하루 6시간, 8시간, 혹은 12~14시간씩 매일 앉아 공부하는 것을 원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3:03 - 13:37)**
한국에서는 하루 종일 학교에 다니고 밤에도 학원에서 공부를 합니다. 한국인들은 아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방법과 부모들이 이를 지원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 본성(쉬고 싶어 하고 일정량 이상은 하지 않으려는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기적에 가깝습니다.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아이들이나 부모를 강제로 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사회 전체로서 이를 해냈습니다.
**(13:37 - 14:07)**
한국은 사람들이 타인과 경쟁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진정으로 경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최고 점수를 받으려 경쟁하지만, 대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 놀라운 효율성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대단합니다. 수많은 학원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일 저와 아내는 금요일 밤 한 학원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되어 있습니다.
**(14:07 - 14:40)**
금요일 밤에 아이들이 직접 신청해서 학원에 온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거리를 걸어가면 학원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엄청난 효율성이며 비범한 일입니다. 사회학자로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14:40 - 15:12)**
이제 기후 변화, 아니 '기후 붕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붕괴는 매우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정 계기가 마련되면 전체 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은 정치적인 의도 없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려는 매우 똑똑한 학자들이며, 그들의 말은 옳습니다.
**(15:12 - 15:45)**
우리는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때로는 급격한 변화가 찾아와 소용돌이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매우 똑똑하고, 제대로 따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은 똑똑하며, 기꺼이 뜻을 모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온 국민이 일 년 내내 학생들이 엄청난 시간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참했던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15:45 - 16:19)**
한국인들이 그것을 해냈다면, 기후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를 대대적으로 재편 및 재지향하여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역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곳곳의 기업들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편과 재검토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16:19 - 16:51)**
한국인들도 이미 이를 실행하고 있지만,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며 국민 전체가 저항 없이 이를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 지혜에 동의합니다.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좋습니다, 기꺼이 동참하고 할 일을 하며 기여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인들입니다. 미국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모두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싸우기만 할 것입니다.
**(16:51 - 18:39)**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어가면서도 미국인들은 "적어도 내 소신을 바꾸지 않았어", "내 방식대로 했어", "죽어가지만 적어도 난 자유로웠어", "내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나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나라,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은 저에게 희망을 줍니다. 전 세계 모든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헌신합니다. 비록 한국에서 돈과 수단이 있을 때 받는 교육의 질에는 못 미칠지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10km를 걷고, 흙바닥에 슬레이트 보드만 놓인 야외 학교일지라도, 부모들은 단돈 5달러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합니다. 전 세계 신흥국이나 부유층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모습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에티오피아, 브라질,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국가의 학교들을 직접 방문하고 지원하며 목격한 이러한 교육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사람을 겸허해지게 만들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https://youtu.be/OtwM1GBBFCI?si=zmu9Az6WDudlWUQI